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하일 고르바초프 (문단 편집) === 중국과 비교 ===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동시기 추진되었던 [[덩샤오핑]]의 개혁과 자주 비교된다. 두 나라의 사정을 우선 비교해보면 소련 말기 경제 사정이 상당히 나쁘기는 했지만, 덩샤오핑이 정권을 잡은 문화대혁명 직후 중국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덩샤오핑이 정권을 잡은 80년대초 중국의 1인당 GNP는 200달러 남짓이였다. 당시 중국은 만성적인 식량부족으로 당간부도 식량배급을 받을 정도로 못살았다. 고르바초프가 정권을 잡은 1985년 소련의 GNP는 3,300불 언저리로,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당시의 중국보다는 훨씬 더 잘 살았다. 고르바초프나 소련 공산당이 잘 수습했다면, 민주제는 몰라도 현재의 중국식 체제를 이뤄 국민의 경제생활을 훨씬 윤택하게 할 수 있었다. 실제로 고르바초프는 2000년대 [[중국 공산당]]이 개최한 회의에 초청되어 자신이 너무 정치개혁에 성급했다고 인정하고, 중국 공산당의 길이 더 바람직한 길같다며 뒤늦게 후회하기도 했다.[* 중국 관영 언론 인터뷰에서는 "내가 중국의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충고는 ‘민주화’와 관련된 어떤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동유럽 혁명|(민주화를 용납하면)]]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소련 해체 과정에서 공산당이 영도력을 잃었던 부분에 대한 후회를 밝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5&aid=0000247064|#]][[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1&aid=0000152101|#]][[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81&aid=0000092026|#]]] 덩샤오핑의 경우는 마오쩌둥이 [[대약진운동]]과 같은 급진책을 남발하다가 국가를 재앙에 빠뜨리는 것을 자신이 직접 목격했기 때문인지, 어떤 정책이라도 경험적으로 검증하며 신중하게 추진했고, 이런 시도는 성공을 거두어 냉전 초,중기때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피폐해진 중국을 재건할 수 있었다. 이런 느린 접근도 덩샤오핑이 워낙 혁명가나 행정가로서 명망이 높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는 덩샤오핑 같은 권위는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사용해도 결국 보수파와 개혁파의 갈등속에 흐루쇼프처럼 실각했을 가능성이 많다. 중국이나 소련이나 계획경제의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지속가능이 불가능했고, 양쪽 모두 개혁과정에서 반발은 엄청났다. 여기서 덩샤오핑은 군권을 이용해 [[천안문 6.4 항쟁|유혈사태]]를 감수하면서 민주화 여론을 유혈진압했다. 하지만 동시에 마오쩌둥 사후 마오쩌둥을 '공칠과삼'으로 평가해 문화대혁명을 과로 분류하면서도 공 또한 인정한 것은 덩샤오핑의 교묘한 정치술의 대표적인 예시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제3자의 기준으로 봐도 공로와 과오 모두 있는 것 자체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의 뛰어난 정치술 외에도, 덩샤오핑이 마오 사후 당 중앙군사위 주석을 역임하면서 군권을 장악했던 것이 덩샤오핑의 성공 요인이기도 했다. 천안문 사태 역시 이로 인한 부작용과 모순점들이 누적되면서 이에 반발하여 발생한 사건이었지만, 덩샤오핑은 천안문 사태를 무력 진압함으로써 당내외 반대파의 움직임을 잠재웠다. 이후 [[남순강화]] 등을 통해 개혁정책을 강화했다. 이렇게 중국은 조심스럽게 당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경제개혁을 추진해서 성공을 거두었다. 현재 [[중국]]은 30여년에 걸쳐 계획경제를 자본주의로 전환 중이나 아직까지도 토지나 부동산 같은 경우는 공산주의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중국의 모든 토지는 국가의 소유이며, [[지상권]]의 매매만 가능하다. 지상권이 소유권에 준하는 강력한 권리인데다가, 일반적으로 국가에서 수십년간의 지상권을 보장해주기는 하지만, 실제 본인 소유인 것은 아니므로 중국 부자들이 홍콩이나 해외 부동산 투기에 환장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물론 중국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공산주의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 1998년도에 IMF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고 경기부양을 할 목적으로 공공주택(복리방)의 공급을 축소하고 기존 공급주택을 사유화하거나 민영주택을 대거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지방정부에서 부동산 판매로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바람에 서구권 국가나 러시아처럼 부동산 투기가 사회적인 문제점인 것은 마찬가지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